하나님의 교회 > 하늘부모님의 사랑



빌2: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하나님께서 사람의 모습으로 오셔서 모든 말씀에 순종하셨고 

하늘의 죄인된 자녀를 위해 십자가에 희생하심으로 죄사함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진정 하늘 부모님 말씀에 순종하리라 다짐해 봅니다.


 









하나님의 교회가 전도하는 이유





하나님의 교회가 전도를 열심히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친히 행하신 일이기 때문이죠.



막1:38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하시고



하나님께서 친히 본 보여 주신 일 전도!!!


죽어져 가는 우리들을 생명의 길로 인도하신 하나님의 본을 따라 하나님의 교회는 70억 인류를 


생명의 길로 인도하기 위해 복음을 전합니다.



마28:19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고~



하나님께서 친히 분부하신 일이기에 마음과 정성을 다하겠습니다. 







하나님의 교회가 전도하는 이유



신랑이 만든 돈가스



날씨가 많이 덥네요. 

벌써 여름 옷을 입고 있답니다. ^^;;

일요일은 신랑이 요리하는 날이예요. 행복한 날이죠.ㅋㅋ

냉동실에 있는 돈가스를 구워주네요. 

정성을 생각해서 맛있게 먹었답니다. ㅎㅎ






색깔도 넘 곱고 향기도 정말 좋네요. 


봄이 되니까 핑크색이 이뻐보이네요. ㅎㅎ



하나님의 교회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자들"-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성경의 모든 역사를 살펴볼대 늘베풀어주는 사람은 축복을 받았지만 받으려는 사람은 오히려 축복받지 못했던 일들이 많습니다.

이제 우리들도 복음이 잘되기를 바라고 복음에 합당한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남에게 도움을 주려는 생각과 유익하게 하려는 생각으로 서로를 이끌어 주어야 겠습니다. 영생의 도움, 말씀에 대한 도움, 사랑의 도움을 준다면 우리 시온에는 결코 시험이 없을 것입니다. 사랑만이 넘처날 것입니다. 복음의 열매가 풍성할 것입니다. 구원의 역사가 금방이라도 끝날 수 있을 것입니다. 


고전 13장 4~7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이렇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사랑의 실천 중에 가장 중심이 되는 것은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않고 남의 유익을 구하는 마음입니다.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않는다는 것은 자기의 편안함이나 안일함을 위해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내 마음이 편하고자 오하를 내버리고 속상하다고 소리쳐 버리면 상대방은 얼마나 마음이 아프겠습니까? 내가 좀 불편하고 힘들어도 참고 견디며 온유하게 대한다면 상대방도 사랑으로 대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웃음꽃이 만발하고 화목해지는 것은 당연한 결과입니다. 



어머니 교훈 첫번째 "하나님께서 늘 사랑을 주신 것 처럼 주는 사랑이 받는 사랑보다 더 복이 있습니다. "  하신 말씀처럼 받으려 하지 말고 주는 사랑을 실천해야 겠어요.  그리하여 어머니께 기쁨드리고 싶어요. ^^




하나님의 교회 패스티브닷컴 사도들의 사상


[ 영혼 ]

사도들의 사상




우리 영혼의 주인이신 그리스도께서 알려주신 영혼에 대한 지식은 인류에게 자신이 누구인지를 깨우치게 하고, 우리가 삶의 목적을 어디에 두고 살아가야 하는지 정확하게 제시해주고 있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마태복음 10:28)



예수님의 이 말씀은 우리가 정말 두려워할 분은 하나님뿐이라는 교훈과 함께 흙과 생기, 즉 육체와 영혼의 결합으로 지음받은 인간 창조의 원리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창세기 2:7). 예수님께서는 육신의 죽음과 영혼의 죽음을 구분하셨다. 다시 말해 우리에게는 육신뿐만이 아니라 영혼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구원자로 믿고 따랐던 사도들은 영혼에 대해 어떤 사상을 가지고 있었을까. 사도들의 모든 사상은 예수님의 교훈을 통해 정립되었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통해 세워졌다. 사도들의 사상을 살펴보면 예수님께로부터 우리 인간의 영혼이 존재한다는 가르침을 받았음을 분명히 알 수 있다. 먼저, 바울의 사상을 살펴보자.


바울은 우리 육체가 영혼의 집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집이 무너지면(육체가 죽으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나니 (고린도후서 5:1)


우리의 영혼은 현재 임시용으로 사용하는 장막집, 즉 육체 속에 살지만, 구원을 받아 천국에 가면 하나님께서 지어주신 영원한 집, 즉 영광스러운 부활을 입은 영혼은 영원히 살게 될 것이다.


이러므로 우리가 항상 담대하여 몸에 거할 때에는 주와 따로 거하는 줄을 아노니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하지 아니함이로라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는 그것이라 그런즉 우리는 거하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힘쓰노라 (고린도후서 5:6~9)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보내는 편지에 예수님은 영의 세계에 거하시고 우리는 육의 세계에 거하고 있으니 육을 입고 있는 동안에는 예수님과 따로 거하는 것이며, 자신과 성도들의 소원은 빨리 육신을 떠나 예수님과 함께 거하는 것이라고 썼다. 이 말씀 속에서 육신에 거하는 것은 무엇이고 육신을 떠나는 존재는 무엇이겠는가. 몸을 떠나고 싶다고 한 존재는 바울의 영혼이다. 이는 그의 육체가 생명의 본질이 아니라 육체 속에 있는 영혼이 그의 본질이라는 의미다. 영혼의 존재를 확실히 깨달았던 그는 잠시 살다 떠날 육신을 위한 삶을 살지 않고 영원히 살게 될 영혼을 위한 삶을 살았다. 빌립보교회 성도들에게 보내는 편지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 ··· 내가 그 두 사이에 끼였으니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욕망을 가진 이것이 더욱 좋으나 그러나 내가 육신에 거하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 (빌립보서 1:21~24)


‘내가 그 두 사이에 끼였으니 떠나서’라는 의미는 ‘내가 육신에 거하는 것이’라는 말이 설명하듯이 육신에서 떠나는 것을 뜻한다. 그렇다면 육신에 거하기도 하고 육신에서 떠나기도 하는 존재는 무엇이겠는가. 바로, 바울의 영혼인 것이다. 바울의 또 다른 기록을 보자.


무익하나마 내가 부득불 자랑하노니 주의 환상과 계시를 말하리라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십사 년 전에 그가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내가 이런 사람을 아노니(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고린도후서 12:1~3)


바울은 14년 전 자신이 하나님의 계시를 보았던 사실을 언급하며 그의 영혼이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은 아신다고 두 번이나 강조하였다. 이 말씀 가운데 나타난 바울의 사상은 어떠한가. 그가 만약 영혼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상을 가지고 있었다면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라는 표현을 했을 리 만무하다. 이는 바울이 계시를 볼 때, 자신의 영혼이 몸을 빠져 나와 낙원에 갔었는지, 아니면 몸과 함께 갔었는지 자신은 알지 못한다는 말이다. 바울은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우리에게 몸과 영혼이 존재한다고 여러 구절들을 통해 증거하고 있다.


사도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직전에 주셨던 말씀을 늘 기억하고 있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젊어서는 네가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치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요한복음 21:18)


베드로는 복음의 생애를 마무리하기 직전, 예수님께서 자신에게 주셨던 말씀을 추억하면서 남아있을 성도들을 염려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가 이 장막에 있을 동안에 너희를 일깨워 생각하게 함이 옳은 줄로 여기노니 이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지시하신 것같이 나도 이 장막을 벗어날 것이 임박한 줄을 앎이라 내가 힘써 너희로 하여금 나의 떠난 후에라도 필요할 때는 이런 것을 생각나게 하려 하노라 (베드로후서 1:13~14)


베드로는 바울과 동일하게 자신의 죽음을 가리켜 ‘장막을 벗어난다’라고 표현했다. 그리고 장막을 벗어나는 것을 가리켜 ‘자신이 떠난다’고 말하고 있다. 이는 베드로의 영혼이 육신을 떠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리고 베드로는 수천 년 전 노아시대 죽었던 사람들의 영혼이 그때까지도 살아 있으며 옥에 갇혀 있다고 증거했다.


저가 또한 영으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전파하시니라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 예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순종치 아니하던 자들이라 ··· (베드로전서 3:19~20)


사도 요한도 이 땅에서 순교당한 영혼들이 하늘에 있는 모습을 계시로 보았다.


다섯 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보니 하나님의 말씀과 저희의 가진 증거를 인하여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 있어 큰 소리로 불러 가로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신원하여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나이까 하니 (요한계시록 6:9~10)


육신의 죽음 이후에 존재하는 것은 영혼이다. 사람들은 때때로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인가’ 하고 생각하곤 한다. 나의 주인은 육체가 아니라 육체 속에 갇혀 있는 영혼이다. 이것이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았던 사도들의 생각이었다.


사도들의 표현대로 ‘내’가, 엄밀히 말해 ‘내 영혼’이 육체라는 천막 속에 살고 있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캠핑을 가거나 야영을 할 때 천막에서 지내는 삶은 단 며칠간이다. 천막으로 비유된 육체 속에서의 삶도 마찬가지로 잠시 잠깐이다. 비록 지금은 죄로 인하여 천막에 살고 있지만 하나님께서 준비해두신 영원한 집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삶의 비중을 어디에 두고 살아가야 할지 답은 명확하다.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 (고린도후서 4:18)


사도들처럼 영원한 삶을 준비하는 지혜를 가져야 겠네요. 
아버지께서 예비하신 영원한 집을 생각하며 힘내세요~~^^


양산 매화 축제 






양산 매화 축제 다녀왔어요. ^^



매화 축제 가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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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날씨도 마음도 봄이네요. ㅎ


매화꽃 너무 예쁜데


이쁨을 사진으로 다 남길 수 없네요. ^^;;




가까이에서도... 한 컷 




남는 건 사진 밖에...그래서 좀 바빴네요. ^^


물레방아 마저 시원함이 느껴지는 따뜻한 봄 날씨였어요~~

친정집 밭에서 쪽파를 뽑아 왔어요. 


겨울내내 자식들 주시려고 이것 저것 심어 놓으신 부모님 사랑에 감동이...ㅜ


하나도 버리지 않기 위해 파김치를 담았어요. ㅎㅎ


파의 효능 다 알고 계신가요?


비타민과 칼슘, 철분,등이 풍부하여 위의 기능을 돕고 감기악화를 막는 효과를 낸다고 하네요. 


파김치 삭혀서 많이 먹어야 겠어요.  ^^





어항속 새끼 안시

새끼 새우 

새끼 고동들이 사는 공간입니다.

새로 태어나는 아이들을 위해 만들어진 공간이지요. ㅎㅎ

먹이 먹는 모습이 이렇게 귀여울수가....^^

어미 안시가 빼꼼 고개를 내미네요. ㅋ 





사람과 영혼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인가. 
인간의 근원적이고 존재론적인 문제에 답을 던지다.

샘이 죽은 후 몰리는 혼자였다. 잦아지는 그리움에 슬픔이 복받쳐도 위로해줄 사람이 없었다. 그와 함께했던 소파에 앉아 샘을 그리워하던 몰리에게 한 사람이 찾아왔다. 오다메였다. 그리고 몰리는 깨닫게 된다. 샘이 영혼의 상태로 자신의 주위를 맴돌고 있음을.


1990년, 전 세계적으로 대히트를 쳤던 영화 ‘사랑과 영혼(Ghost)’의 한 장면이다. 전반부의 안타까움이 절정에 다다를 즈음 이 장면에 이어 몰리는 결국 샘을 만나게 된다. 오다메 속에 들어온 샘의 영혼과의 재회는 보는 이의 노스탤지어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영화 '사랑과 영혼'의 한 장면하나님의 교회 >>사람과 영혼                                                                                      영화 '사랑과 영혼'의 한 장면

하지만 우리는 이 영화에서 차마 사랑하는 사람을 두고 떠날 수 없었던 샘의 영혼이 던지는 메시지보다 ‘사람에게 과연 영혼이라는 것이 존재할까’라는 의문을 더 가지게 된다. 과연 영혼이라는 것은 존재할까. 영화에서 샘의 영혼은 몸을 벗어나 활동하며, 눈으로 볼 수 없고, 만질 수도 없는 존재로 설명된다. 물론 영화는 픽션(fiction)이다. 그러나 영화의 소재인 영혼은 논픽션(nonfiction)이다.


사람의 영혼에 대한 문제는 종교를 떠나 오랜 세월 회자되고 있다. 영혼 존재에 대한 갑론을박은 결론 없이 이어진다. 이유는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다’ 말할 수 없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 속에는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것이 많다. 겨울이면 유행하는 인플루엔자, 동장군이 몰고 온 찬바람, 손바닥에 득실대는 세균들…. 인간이 가진 시력으로는 그 유무를 확인할 수 없다. 그러나 이들의 존재를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는 이들의 존재를 증상이나 증거로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는 바와 같이 인플루엔자의 증상은 열과 몸살, 기침 등이 있으며, 동장군이 몰고 온 찬바람 또한 피부로 그 증거를 체감할 수 있다. 손의 세균은 현미경을 통해 그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영혼의 존재는 어떤 증거로 확인할 수 있을까. 성경에서 그 해답을 살펴보자.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창세기 2:7)


생령이란 ‘산 영혼’, ‘산 생명’이란 뜻이다. 흙이라는 육체 속에 하나님의 생기(영혼)로 사람이 창조됐음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살아 있는 사람 모두에게는 영혼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영혼의 존재를 어떤 증거로 확인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의 명쾌한 답이다. 누구든지 살아 있다면 그것이 바로 영혼의 존재를 입증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이 숨쉬고, 먹고, 움직이며 살아가는 모든 것, 그것이 바로 사람 속에 영혼이 존재한다는 증거다.

그렇다면 반대로 생각해보자. 사람의 몸속에 영혼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


여호와께서 엘리야의 소리를 들으시므로 그 아이의 혼이 몸으로 돌아오고 살아난지라 (열왕기상 17:22)


이 내용은 엘리야라는 선지자가 사르밧 지역에 사는 한 과부를 만나 그의 죽은 아들을 살리는 장면이다. 이때 엘리야 선지자는 하나님께 기도했다. ‘아이의 영혼을 몸으로 돌아오게 해달라’고 말이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엘리야의 기도를 들으시고 빠져나온 영혼을 몸으로 돌려보내 아이를 살아나게 하셨다. 즉 영혼이 몸과 분리되면 사람은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다. 그 사람의 몸에 영혼이 없다는 것 자체가 죽었음을 의미한다. 이를 두고 성경에서는 ‘돌아간다’고 설명했다.


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신은 그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 (전도서 12:7)


‘돌아간다’는 의미는 ‘왔던 곳으로 다시 감’을 뜻한다. 예를 들어 아침에 집에서 나와 학교로 간 아이가 하교 후에 돌아간다면 어디로 갈까. 다시 집으로 가야 ‘돌아간다’는 말이 성립된다. 만약 아이가 하교 후 도서관에 들른다면 이는 ‘돌아간다’는 표현을 쓸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죽게 되면 몸과 영혼이 분리되어 ‘왔던 곳’으로 돌아간다고 하셨다. 육체는 흙에서 왔기에 땅으로 돌아가고, 영혼은 하나님으로부터 왔기에 하나님께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영혼과 육체의 결합으로 살아 있던 사람은, 수명을 다한 후 영혼과 육체의 분리로 죽게 된다. 이와 관련해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표현하는 습관이 하나 있다. 예로부터 사람의 죽음에 대해 ‘돌아가셨다’라고 말한다는 것이다. 영혼은 아마도 육체가 의식하지 못하는, 삶과 죽음에 대한 메커니즘을 깨닫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몸을 보호하기 위해 인류는 옷을 지어 입기 시작했다. 옷은 유구한 역사 속에 변화를 거듭해 갔다. 그리고 명품이라는 브랜드 속에서 고가의 제품으로 태어나기도 했다. 그렇다고 몸보다 중요하지는 않다. 또한 옷이 아무리 비싸도 저절로 혼자 무엇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사람이 벗어 놓으면 그 자리에서 조금도 움직여지지 않는다. 우리의 몸이 이와 같다. 영혼에서 탈피된 육체는 아무것도 아니다.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는 존재가 우리 몸이다. 벗어놓은 옷과 같다. 중요성을 논하자면 옷보다 몸이 중요하듯 육체보다 영혼이 더 중요하다는 결론이다.


영혼은 존재한다. 그 존재를 믿을지 말지는 각자에게 달렸다. ‘사랑과 영혼’의 몰리처럼 말이다.

출처 : www.pasteve.com

영혼의 이치를 깨닫게 하시고 영원한 세계를 소망하며 준비할 수 있게 해 주신 아버지 어머니께 감사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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